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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

 

 

콰이강의 다리 명화 EBS 방송시간

2024년 06월 22일(토요일) 밤 10시 35분

 

 

 

콰이강의 다리 명화 기본정보

  • 원제 : The Bridge on the River Kwai
  • 감독 : 데이비드 린
  • 출연 : 윌리암 홀든, 잭 호킨스, 알렉 기네스, 하야카와 세슈
  • 제작 : 1957년 / 영국, 미국
  • 방송길이 : 162분
  • 나이등급 : 12세

 

 

콰이강의 다리 출연진

  • 감독 / 데이비드 린
  • 주연 / 윌리엄 홀든(셰어스), 잭 호킨스(워든 소령), 알렉 기네스(니콜슨 대령), 하야카와 세슈(사이토 대령), 제임스 도널드(클립튼 소령), 안드레 모렐(그린 대령), 피터 윌리엄스(리브스 대장), 존 박서(휴즈 소령), 펄시 허버트(그로갠), 해롤드 굿윈(베이커), 제프리 호른(조이스 중위)

콰이강의 다리

 

 

 

콰이강의 다리 줄거리

이 영화의 줄거리는 전쟁했던 내용을 각색해서 만들어졌습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영국군 공병대는 동남아시아 전선에서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울창한 밀림 한가운데 있는 포로수용소로 끌려간다. 일본군의 포로수용소장인 사이토 대령(하야카와 세슈 분)은 니콜슨 대령(알렉 기네스 분)에게 콰이강을 관통하는 다리를 건설할 것을 명령한다. 지독한 원칙주의자인 니콜슨 대령이 제네바 협약에 따라 장교들은 노역에 참여할 수 없다고 버티자 사이토는 니콜슨을 독방에 가둬버린다. 하지만 다리 공사가 계속 지지부진해지자 사이토는 일본군의 지휘를 받지 않겠다는 니콜슨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하고 한 달 만에 니콜슨을 풀어준다. 니콜슨은 포로로 전락해 버린 부하들의 기강을 확립하고 자신들의 손으로 후세를 위해 다리를 건설한다는 신념으로 다리를 완공하는 데 성공한다. 한편 미 해군 소속 쉬어즈(윌리암 홀든 분)는 구사일생으로 포로수용소를 탈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콰이강의 다리를 폭파하는 임무에 투입된다. 포로로 붙잡힐 당시, 편하게 대우받기 위해 이등병이라는 계급 대신 중령이라고 속였던 사실이 발각된 것. 영국군 폭파전문가 워든 소령(잭 호킨스 분)은 특공대원 쉬어즈와 두 명의 자원병을 이끌고 콰이강의 다리를 폭파하는 임무에 나서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콰이강의 다리 주제

콰이강의 다리라는 명작의 주제는 많은 이들에게도 영감과 흥미로움을 유발하였다. 영국군 공병대가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밀림 한가운데의 포로수용수로 끌려온다. 보급로를 개척하기 위해 철도공사를 진행 중인 일본군은 포로가 된 공병대원들을 공사에 투입하기로 한다. 철조망도 없는 포로수용소였지만 주변이 온통 울창한 밀림이기 때문에 탈출조차 불가능한 상황. 니콜슨 대령은 일본군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하지만 장교들도 강제노역에 동원한다는 일본 측 방침에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죽음을 무릅쓰고 항거한다. 결국 포로수용소 소장인 사이토 대령과의 자존심 대결에서 승리한 니콜슨은 부하들을 독려해 가면서 이적행위나 다름없는 다리 공사를 능동적으로 진행한다. 결국 군인으로서의 명예와 자존심에 대한 집착으로 다리를 완공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아군의 특공대가 다리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한 채, 다리를 지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 다리를 지키려는 니콜슨 대령과 다리를 폭파하려는 영국군의 갈등은 이 영화의 주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무너지는 다리를 바라보며 니콜슨의 유명한 독백이 나온다.‘내가 지금까지 뭘 한 거지?’. 그리고 영국군 포로 중 한 사람이었던 의무장교가 최후의 한마디를 외친다. 미쳤어! 모두 다 미쳤다고! 전쟁으로 인해 변화되는 인간의 미묘한 심리를 장대한 영상으로 풀어낸 걸작.

 

 

 

데이비드 린 감독의 화려한 이력

데이비드 린 감독의 화려한 이력들을 알아보려고 한다. 맨 처음으로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콰이강의 다리(1957), 닥터 지바고 (1965) 등의 대작을 만든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영화계의 거장으로, 40년대와 50년대 영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그는 스튜디오 잡역부로 영화계에 입문해 30년대에는 생각하는 것보다 꽤 많은 이들에게 촉망받는 편집기사로 이름을 날리고 전쟁드라마 우리가 복무하는 곳(1942)으로 감독 데뷔했다. 그 후 밀회, 위대한 유산, 올리버 트위스트 등의 세련된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50년대 중반 그는 할리우드의 자본을 바탕으로 서머타임, 콰이강의 다리,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라이언의 딸(1970)로 이어지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대작을 연출했다. 감독으로 활약하기 전 직업이었던 편집기사 출신답게 그는 매 영화마다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영화의 화면을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닥터 지바고 이후 그의 후기작품에 대한 평론가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으며 무척이나 차가웠다. 라이언의 딸이 영국에서 1년간 장기 상영됐을 만큼 관객의 사랑을 받았지만 평단의 집요한 비판에 의욕을 잃은 그는 1984년 인도로 가는 길(1984)을 내놓을 때까지 무려 14년간을 칩거상태로 보냈고, 노스트로모를 기획하는 도중에 세상을 떠났다. 린은 많은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스크린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영화의 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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